-돌에 새겨진 도시의 역사
(CITY of THE STONES THAT SPEAK)
굳이 시인이 아니더라도 크라쿠프를 '말하는 돌들의 도시'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도시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파괴를 피한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이 풍성하기 때문이다(중세에 건설된 도심도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귀족 들의 저택, 100곳이 넘는 교회와 수도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의 하나, 폴란드 왕 궁...., 중세부터 르네상스를 거쳐 바로크 시대에 이르는 보석들을 그토록 풍부하게 자랑할 수 있는 도시는 드물다. 이것이 크라 쿠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맨 처음 오른 이유다.
크라쿠프는 965년에야 도시 면허장을 받았으나, 그 전에 이미 비스와 강변의 교역지 이자 가톨릭의 선교 중심지로 유명했다. 크라쿠프는 1039년에 주교구가 된 뒤, 분할된 폴란드에서 지배 세력인 피아스트 왕조의 수도가 되었다. 피아스트 왕조는 근처 바벨 언덕에 바벨 성과 성당을 세웠다. 폴란드 왕들은 18세기까지 이 성당에서 즉위하고, 세상을 떠나면 이곳에 묻혔다.
1241년 타타르족이 침략해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으나, 피아스트 공을 비롯해 훗날의 볼레스와프 왕과 그의 후계자 카시미르 3세가 왕성한 재건 사업을 벌였다. 새 도시는 중심부의 대형 광장 리네크를 시장으로 삼아 바둑판 형태로 건설되었으며, 중세 후기 유럽의 선진 도시 중 하나로 발전했다.
1364년에는 크라쿠프대학이 설립되었다. 폴란드 최초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가운데 하나다. 유명한 천문학자 니콜 라스 코페르니쿠스는 수천 명의 학생과 함께 여기서 공부했다. 15세기에는 이 대학에 외국인도 1만 명이 다녔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수치다.
1439년 크라쿠프는 한자동맹에 가입해 전 세계 직물 거래의 중심지로 특화했으며, 이 활동을 선도했다. 리네크 광장에는 지금도 '수키엔니체'라는 길이 90미터가 넘는 직물 길드회관이 있다.
교역이 번성하자 부르주아만이 아니라 귀족들도 부자가 되어, 두 계급은 시장 근처에 장중한 저택들을 지었다. 그 가운데 많은 저택의 안마당이 지금도 남아 있다. 예술가들과 장인들은 아낌없는 후원에 이끌려 독일과 보헤미아에서 들어왔는데, 그중에는 뉘른베르크 출신인 중세 후기의 대표적인 조각가 파이트 슈토스도 있었다. 그는 성모 마리아 성당을 위해 라임 나무에 200개의 인물상을 조각해서 금박을 입힌 세 폭짜리 제단을 제단했다. 슈토스는 10년 동안 이 작업에 매달렸다. 이는 크기가 가로 11미터 세로 13미터로 유럽에서 가장 큰 고딕 제단이며, 후기 고딕 제단으로는 가장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도시의 쇠퇴
크라쿠프의 황금기는 1506년부터 1572년까지로 지기스문트 1세와 2세가 이탈리아 화가들과 건축가들을 궁정으로 초대해 가장 훌륭한 르네상스 양식으로 바벨 성을 짓던 시기다. 토스카나 궁정 건축가 바르톨로메 오 베레치의 설계에 따라 건설된 지기스문트 예배당은 폴란드에서 가장 중요한 르네상스 건축물이다. 훌륭한 가구와 그림들, 그리고 플랑드르풍의 유명한 아라스 태피스트리들은 3층 높이의 이탈리아식 아케이드를 통해 방문할 수 있다. 왕실 보물실에는 1320년에 제작한 대관식 예검 등 귀중한 왕실 보물들이 들어 있다.
크라쿠프는 1596년 왕도(王都)가 바르샤 바로 옮겨 간 뒤에도 여전히 폴란드 문화의 중심지였지만, 그 중요성은 퇴색했다. 최후의 공포가 드리운 것은 나치스 '총독' 한스 프랑크가 통치하던 독일 점령기, 곧 1939년부터 1944년까지였다. 크라쿠프의 예술과 문화의 역사에 크게 기여한 커다란 유대인 거류지 카지미에르즈 지구는 완전히 파괴되고 주민들은 수용소로 흩어졌다. 그러나 지하갱도를 폭파시켜 도시를 깨끗이 지워 없애려던 나치스의 계획은 다행히도 소련군의 기습 공격으로 제지되었다.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 건축물
(MOTHER of ALL CHURCHES)
쾰른 대성당은 아마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독일의 건축 유산일 것이다. 이 교회는 중세에 이미 '모든 교회의 어머니'로 묘사되었다. 이후 19세기 중반부터는 일종의 국가 성소로 격상되었다. 1880년 남 쪽 탑에 십자가를 올려 건축을 마감했을 때는 초석을 놓은 지 632년이 지난 뒤였다. 최초의 고딕 성당이 이미 프랑스에 존재하던 터에 쾰른 정부는 4세기에 지은 옛 성당을 새로 짓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초석 놓기는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동방박사 성골 함(아기 예수를 알현한 세 '왕'의 유해가 들어 있다고 한다)을 마일란트에서 쾰른으로 이전 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성골함 때문에 쾰른은 서방에서 손꼽히는 순례지가 되었다.
250년 동안 중지되었던 공사
건축 총감독 게르하르트와 후임자 아르놀트는 성가대석과 3량 식 수량(십자형 교회당의 좌우 날개 부분)을 설계하면서 아미앵 대성 당을 본으로 삼았다. 5량 식 본당은 12세기부터 있던 옛 쾰른 성당에서 물려받았다. 1322년 9월에 하인츠 폰 비르네부르크 대주교가 성가대석을 축성했지만, 건물 완공까지는 한참 멀었다. 본당 서쪽은 나무 칸막이 로 막았고, 석공들은 남쪽 탑을 세우느라 분주했다. 오늘날까지 전하는 4미터 길이의 설계도에 따르면 그 답은 성당의 전체 길이 에 비례하게 되어 있었다. 길이 500미터에 높이는 150미터가 되는 것이다. 북쪽에는 1410년부터 수량 공사가 진행되어 1508년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되었다. 또한 두 벽 사이에 아치 모양으로 걸쳐 버팀벽 같은 구실을 하는 전형적인 고딕식 플라잉 버트레스가 처음으로 폭넓게 사용되었다.
하지만 건축 공사는 1560년에 중단되었다. 일부에서는 그것이 시대적 분위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하늘을 쳐다보기보다는 지상의 세속적인 삶을 더 중시 하는 실용의 시대가 도래했고 이제 그들은 세상을 탐험하고 정복하는 일에만 온통 관심을 기울이 그토록 웅장한 교회 건물을 짓는데 들일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이미 계획된 성당의 약 90퍼센트를 예배에 이용할 수 있었고, 임시 나무 지붕이 아케이드 위에서 내부를 감쌌다.
쾰른 대성당은 19세기까지는 계속 그림자처럼 존재했다. 프랑스혁명 때는 프랑스 기병대의 화약 창고로 쓰였고, 그 다음에는 교구 교회라는 약한 역할로 격하되기도 했다. 1815년 쾰른이 프러시아 영토가 되자 온 독일인들이 건설 공사가 다시 시작되기를 희망했다. 국가 성소 설립을 옹호한 프리드리히 4세가 1842년 남쪽 수량의 파사드를 위한 초석을 놓았다. 그로부터 38년 뒤, 츠베르너와 포이크텔의 지도 아래 성당이 완성되었다. 공사 마지막 시기의 이 두 건축 감독은 중세의 평면도와 입면도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들의 작품은 후기 낭만주의 건축의 걸작으로 끊임없는 노력과 역사의식을 동시에 보여 준다. 츠베르너는 남쪽 수량으로 설계를 개선했으며, 이는 신 고딕 건축의 걸작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단연 서쪽 파사드다. 파사드를 장식한 쌍탑은 높이 차이가 6.4센티미터에 불과하며, 더 높은 북쪽 탑은 157미터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너비는 좁고 높이는 아득한 120미터 길이의 중앙 본당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쾰른 대성당의 중요한 보물들 가운데는 게로 십자가도 있다. 10세기에 만들어진 이 십자가는 서방에서 가장 오래된 십자가 가운데 하나다.
동방박사 성골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훼손된 내부를 수리한 뒤 주 제단 뒤에 안치 했다. 전문가들은 12세기에 만든 이 성골함을 가장 중요한 중세 금 세공품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쾰른 대성당은 지금도 공사 중이다. 오염이 성당의 건축 자재에 해롭기 때문이다. 쾰른 시민들은 끊임없는 보수와 불편한 공사용 임시 가설물을 감수하기로 했다. 그들 말로는 성당이 완성되는 날이 세계가 끝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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